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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목숨은 소중하다. 그러면서도 사람의 목숨은 한순간에 덧없이 스러진다.

 성실,용모 단정,성적 우수,예의바름. 이상하게 내 뒤에 따라오는 수식어이다. 언제부터 였을까 갑자기 다들 날 그런식으로 생각하며 좋아하고 호감을 가진다. 하지만 나는 남들이 생각하는 그런 착한 아이는 아니다.

 그저 자기들이 멋대로 생각해서 그런 이미지를 만든 것이다. 나는 학교를 다니면서 튀고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어느새 학교에서 유명인이 되어있었다. 내가 어딜 가던 졸졸 따라다니는 학생들이 생겼고
알게모르게 팬클럽이 생겼다는 말도 어렴풋이 들렸다.

 귀찮아. 왜 나한테 이렇게 관심을 주는거지? 보통 자기보다 잘나면 시기하고 질투하는게 정상 아닌가?
그런데도 나는 어떻게 할 수 없다. 이미 엎질러진 물. 현재 상황에서 내가 선택할 것은 두 가지밖에 없다.

 하나는 가면을 덧쓰고 이대로 더 완벽을 '연기'해서 지금 상황을 이어가는 것.
둘은 실망감을 안겨줘서 나에 대한 좋은 평가들을 없에는 것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보면 참 재밌다. 잘하던 사람이 한 번 실수를 하면 그간 쌓아놓았던 것이 전부 물거품이 되고 또 못하던 사람이 한 번 잘하면 잘했다고 난리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남이 잘되는 것이 아니꼬와서 어떻게든 나쁜 부분을 찾으려는 것일까

 나는 일단 지금에서 더 완벽을 연기하고 있다. 물론 이게 내 자신을 갉아먹는 일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괜찮다.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기에 나는 오늘도 내일도 버틸 수 있다.

"다녀오겠습니다"
"응 오늘도 힘내!"

  등교길은 항상 조용하다. 1시간 일찍 출발하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일찍 등교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학교를 일찍 가다보니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도 빨라지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것 같아 기분이 좋다.

 교실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환기를 시킨다. 항상 느끼지만 교실 공기가 너무 좋지 않다.
창문을 열고 나서 오늘 할 일을 생각해본다. 오늘 무슨일이 생길지 예측해보고 과제는 없었는지 점검한다.

 그러다 문득 책상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보니 교과서가 아닌 무언가 이질감이 느껴지는 종이가 만져졌다.
내가 가정통신문을 그냥 성의없이 넣어놨을리는 없어서 꺼내보니 아무리 봐도 편지지로밖에 보이지 않는 종이가 나왔다.
나한테 오는 편지는 대게 내용이 같다.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역시 러브레터이다. 내용은 딱히 보기가 싫지만 그래도 어떻게보면 편지도 하나의 글이기 때문에 끝까지 읽었다.

  은아님에게
언제나 제일 먼저 학교에 와서 반의 친구들을 위해 교실의 탁한 공기를 환기시켜주는 아름다운 마음과 항상 미소를 잃지 않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에 눈이부ㅅ...

-찌이익
 무심코 찢어버렸다... 하지만 더 읽었다가는 충격으로 오늘 아무것도 못해.. 특히 정신적으로. 이거 너무 심한거 아니야? 신종 괴롭힘? 요즘은 이런식으로 왕따를 시키는거야?
충격적인 내용이었지만 마지막 문장을 읽고 핵심 내용을 파악했다. 확실히 그거다. 제 여자친구가 되어주세요.라는거
 방과후에 학교 뒷건물로 와주세요 라는 마지막문장, 완전히 만화에서 보던 그거잖아.. 으..싫어 소름돋아..
아무튼 일단은 편지를 쓴 사람의 성의를 봐서라도 나는 대개 부르는 장소로 나가준다. 하지만 간혹 불건전한 마음을 품고 있는 아이도 있어서 조심해야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런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다행인것같다.
 물론 나의 대답은 No혹은sorry. 당연하다. 보통 러브레터를 쓰는 아이들은 진심으로 나에게 고백하는 것이겠지만 나는 딱히 흥미도 없고 신용이 가지않는다. 정말로 나를 좋아하긴 하는거야?

"안녕 좋은아침"
"오늘도 일찍왔네 은아는"

 결국 편지에 시간을 빼앗겨 책도 못읽고 점점 등교하는 아이들에게 인사를 해주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침 조회 시간이 되었다.
한결같이 쾌활하신 우리 담임선생님께서 아이들에게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들고 교실로 들어오셧다.

"자 여러분 이제 기말고사가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공부는 열심히 하고계시죠?"
"""에에에"""
"에에에 가 아닙니다. 기말고사가 끝나면 여름방학도 금방이니 조금만 힘을 내세요"
"""네!!!"""

 사실 시험은 바로 3일 후이다. 뭐 다들 싫다고는 해도 시험기간이면 학교가 일찍 끝나니 좋을것이다.
아침조회가 끝나고 1교시 시작하기 전 반 애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니 역시나 공부 안하는 애들이 대부분이라 그런지 시험기간에 뭐하고 놀지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이렇게 아이들이 공부 안하고 놀아주는 덕분에 나는 성적이 좋아지니까 고마운 일이다.

 수업시간은 지루하다. 항상 선생님은 주입식으로 교과서에 담겨져 있는 글만을 읽어준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수업을 들으려 하는 아이들은 줄어들고 공부에 흥미가 떨어지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선생님의 목소리 톤도 낮고 느리면 효과는 두 배. 그래도 나는 배우는 것이 재미가 있어서 졸지 않고 듣지만 수업중에 잠깐 주변을 둘러보면 다들 책상에 엎드려 자고있다.
한명, 두명이 자기 시작하면 전염병이라도 도는것마냥 전염되어 절반 이상이 자기 시작하며 . 그러면 이제 선생님은 자는 아이들을 깨우려고 수업의 흐름이 끊긴다.

 선생님도 고생이지만 학생들도 죽을맛일거다. 수업이라고는 그저 교과서를 읽는것이 전부고 거기에 목소리 톤도 낮고 느리면 졸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리면 언제 잤냐는듯 쌩쌩해져서 웃고 떠든다. 항상 보는거라 익숙하지만 역시 신기하다.
 나는 굳이 그 사이에 껴서 같이 어울리거나 하지 않는다. 언니는 친구를 사귀라고 하지만 나는 별로 친구같은거 없어도 상관없다. 남들이랑 어울리다보면 뭐랄까 기운이 빨리는것 같고
내가 말주변이 없어서 별로 재미도 없고 차라리 혼자 있는것이 더 편하다. 하지만 내가 다가가지 않아도 먼저 다가오니까 딱히 내가 먼저 말을 걸 필요가 없달까 솔직히 귀찮다 사람 상대하는거.

"은아야 은아야! 이번 방학에 뭐할거야? 어디 놀러 안가?"
"응? 딱히 예정은 없어"
"그럼 시간이 많다는거네!"
"응"
"앗싸! 알았어"

 여름이니까 바다라도 갈 생각이려나. 확실히 나도 집에서만 할일없이 있는것 보다는 밖으로 나가는것도 좋겠지.
일정이 정해지면 언니한테도 말해서 같이 가야지 응 그러자.
놀러갈 계획이면 빠르게 정하는 애들이다보니 아마 오래걸리지는 않을거같다.

 점심시간은 학생들이 학교를 오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며 가장 즐거운 시간일 것이다.
그렇기에 학교는 소란스러워진다. 나는 그 혼란을 틈타서 혼자 조용한 곳으로 도망을 친다는 상상을 항상 하지만 상상은 상상일 뿐 현실이 되지 않는다.

""은아야~ 같이 밥먹자~""
"..응 그래"

 여자아이들은 어찌 그렇게 말이 많은지 끊임없이 수다를 떤다. 나는 그 대화내용을 따라가기도 벅차서 내가 말을 꺼내는 일은 없다. 그냥 멍 하니 듣기만 할 뿐이다.
그러다가 간혹 나한테 질문을 하거나 의견을 물을때는 굉장히 당황해서 말을 더듬는다. 하지만 그런 내 모습도 좋아서 어쩔줄 몰라하는 바보들이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

 방과후 편지의 대답을 들려주기 위해 기다려 달라는 장소에서 기다리는 중이다. 슬슬 여름이 다가오는것이 느껴지는 따가운 햇살에 슬슬 버티기 힘들어질 즈음 편지를 쓴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손에 무엇인가를 들고 당당하게 내쪽으로 다가온다. 

"아! 은아님!"

 내 앞으로 온 남자애 그러니까 이름이 뭐였더라 장현석? 맞아 그런 이름이었지. 어디서 봤나 했더니 테니스부의 에이스 장현석이다.
잠시 숨을 고르더니 밝은 표정으로 손에 들고있는 화분을 나에게 내민다.

"이거 받아주세요!"
"..응?"

 얼떨결에 받은 화분에는 물망초가 있었다. 아 그렇구나 하지만 유감이네. 좀 더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을텐데.

"저.. 처음 봤을때 한눈에 반했어요! 그렇지만 은아님은 저따위에게 관심 없을것같고.. 아무튼 좋아합니다!"
"마음은 잘 받을게. 따위라니 너무 자신을 낮추지 마 자신감을 가져. 그리고 나 말고 좀 더 주변을 보는게 좋을거야"
"아.."

 아무튼 이걸로 용건은 끝. 내 의사도 잘 전해졌겠지. 싱긋 웃어주며 받은 화분을 안고 집으로 향한다. 화분은 잘 받을게.

"다녀왔습니다!"
"어서와 은아야, 오늘도 고생많았어"
"에헤헤 언니이~"
"아이고 그래그래 일단 신발정리먼저 하고 안기자?"
"응.."

 집에오면 항상 언니가 날 맞이해준다. 집에서는 연기를 하지 않아도 되니까 안심하고 언니에게 응석부린다. 이게 내 본모습, 언니 외에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나'
언니에게 혼나고 신발정리를 한 뒤에 웃으며 다시 언니에게 안긴다. 지금 남들이 보면 완전히 얼굴이 풀어졌겠지 한심한 얼굴이지만 상관없어 누가 보는것도 아닌데.

"얘는 왜 항상 집에만 오면 이렇게 애가 되는건지 참."
"히히 언니~"

 한숨을 쉬면서도 안겨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한동안 언니의 손길을 받다가 씻으라며 욕실로 떠미는 언니에 밀려 욕실로 들어갔다.
가볍게 샤워를 하고 따뜻한 물이 받아져 있는 욕조에 몸을 담갔다. 따뜻한 온기가 온몸에 퍼져 기분이 좋지만 나는 혼자있는 시간이 싫다.
여유가 생기고 연기를 할 필요가 없어지면 쌓여있던 스트레스가 밀려온다. 남들에게 잘보이려고 거짓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결코 쉬운일은 아닌것이다.

 무리해서 연기를 하다보니 스트레스가 쌓이며 언제인지 강박증이 생겨버렸다. 내가 인식할 수는 있었고 그렇게 심하지는 않지만 그래서 더 힘들다. 
강박증이 생겨버려서 더럽거나 난잡한게 싫어졌다. 하지만 그걸 학교에서 내보일수는 없는 일이라 집에서 그나마 정리정돈을 잘 하는 정도로 그치지만 힘들다.
그리고 이유모를 부정적인 생각들이 나를 괴롭힌다. 무기력해지고 충동에 사로잡힌다.

 솔직히 죽고싶다. 죽고싶을 정도로 힘들다. 하지만 그저 생각만 하고 자살충동으로 괴로워해야만 한다.
왜냐면 어디가서 상담을 받아봐야 나아진다거나 하지 않는다. 상담은 상담일 뿐. 결국 어떻게 할지는 내가 얼마나 노력을 하느냐 뭘 하냐가 중요하겠지.
하지만 이 역시 부질없다.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과연 그걸 개선할 노력을 할 수 있을까?
 언니에게 상담을 해볼까 했지만 역시 걱정만 끼칠게 분명해서 시도하지도 않았다.

"무으..."
-보글보글

 역시 싫어.
자꾸 이렇게 안좋은 생각만 드니까 애써 다른곳으로 정신을 돌리기 위해 물 속으로 잠수한다.
하지만 이렇게 잠수하는 동안에도 그냥 이대로 죽어버릴까 하는 부정적인 생각만 하게된다.

 그래서 목욕은 그만하고 나왔다.
옷을 갈아입고 거실로 나오니 맛있는 냄새가 코를 간질인다. 

"은아야 밥먹어"
"응"

 언니와 저녁을 먹으며 오늘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러브레터 이야기가 나왔을때는 언니도 소름이 돋았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쉬운점은 방학때 바다에 같이가자고 물어봤을때 너희끼리 갔다오라는 말을 들었을때려나.

 우리집의 취침시간은 9시에서 10시 사이로 꽤나 이른편이다. 언니의 습관이 나한테도 몸에붙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규칙적인 패턴덕분에 하루를 보내는 것이 피곤하지 않아 좋다.
과제가 있거나 시험기간이면 조금 늦은시간에 자러가지만 그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방으로 들어가서 오늘 아침에 읽으려던 책을 읽다보니 어느덧 눈꺼풀이 감겨오기 시작했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10시가 조금 넘어가고 있었다.
책을 덮고 침대로 뛰어들었다. 푹신한 감촉에 금방 잠에 빠져들것만 같지만 침대에 누워서 한참이 지나도 잠이 안온다.

 어쩔 수 없이 배게를 들고 언니가 있는 방 앞으로 갔다. 똑똑 하고 노크를 했지만 방에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언니 자고있으려나.
문을 살짝 열고 보니 작은 숨소리만이 들린다. 살금 살금 언니가 깨지 않도록 조용히 언니가 자고있는 침대로 들어갔다.

"잡 았 다 !"
"히..히야아아아악?!"

 갑자기 언니가 눈을뜨고 섬뜩한 목소리로 나를 껴안았다. 너무 놀라서 몸이 경직됬다.

"히히 깜짝 놀랐지.. 어라? 은아야?"
"..."

 이런거에 약하다는걸 알면서도 언니는 자꾸 이런 장난을 친다.
뭐라고 하려다가 언니 품으로 파고드는걸로 대신했다.

"많이 놀랐지? 미안해"
"우.. 알면서 그러지 마"
"하여간 어리광쟁이라니까 은아는"
"잠 안와 재워줘"
"그래그래 알았어요 우리 공주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부드럽고 따뜻한 손길과 언니의 체온에 마음이 포근해진다.점점 눈이 감기고 어느새 잠에 빠져들었다.


 시험이 끝나고 오랫만에 걷는 번화가의 거리는 색달랐다. 
학교에서,학교 밖에서 남들의 시선을 신경써야 했었던 나이다.
이렇게 놀라다닐 기회가 지금까지 없어서 기분이 좋아진 나는 어린애처럼 천진난만하게 여기저기 쏘다녔다.

 옆에서 현지 언니가 주의를 주지만 오늘의 나는 봉인 해제인 것이다. 
화장도 완벽하고 머리도 꾸며서 나름 변장은 완벽하다. 
항상 남들에게 생머리와 교복을 입고 있는 모습만 보여줬으니 사복을 입고 머리만 조금 손질하면 나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아까부터 누군가의 기분나쁜 시선이 느껴졌지만 하루 이틀 일도 아니기에 신경쓰지 않았다.
길가에서 파는 음식들을 먹으며 언니와 옷을 구경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웅성거림을 즐긴다.

 붉어진 하늘이 해가 기울어 모습을 숨기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구경하는 것은 좋아하지만 그렇게 많이 사는건 좋아하지 않는 나는 구경했던 것들 중에서 몇가지만 샀다.
많지 않은 짐을 들고 언니와 저녁에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면서 걷던 도중 어쩐지 불길한 느낌에 식은땀이 흐른다. 
근처에 그 불안감의 원인이 있는 것 같다. 지금까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던 걸까 노골적인 악의가 느껴진다.

"응? 은아야 왜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히히 그보다 언니, 나 스파게티 먹고싶어!"
"그러자"

 나는 애써 불안감을 숨기고 밝은 표정으로 음식점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렇게 그 가게로 가는 그 순간 눈이 마주쳤다. 잠깐의 순간 옆을 지나쳤고 얼굴을 가려서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눈을 마주쳐 버렸다. 
먹잇감을 찾았다는 사나운 맹수의 그것. 소름돋는 그 얼굴은 모자를 깊게 눌러써서 얼굴을 가렸지만 그 너머의 표정이 보였다.

 기쁨에 휘어지는 눈꼬리와 입꼬리. 비틀리다 못해 한바퀴 돌아버린 것 같은, 두려움이 느껴지는 미소를 짓고있는 것이다. 
진작에 나에게 기분 나쁜 시선이 닿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 옆에서 떨고있는 나를 알아차리고 언니가 나를 안아준다.

"어...언..니..빠...빨리...가자"
"응.. 언니 옆에서 떨어지면 안돼 알았지?"

 나도 모르게 떨리는 목소리로 언니를 재촉하자 언니가 나를 끌고 지나간다.

 그순간, 바로 등 뒤에서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경직된 몸을 돌려 뒤를 보니 얼굴을 가린 4명의 괴한이 각자 손에 들려 있는 칼로 사람들을 찌르기 시작한 것이다.

 갑작스럽게 벌어지는 상황에 주변은 패닉에 빠졌고 괴한중 한명과 마주쳤던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머리속이 하얘지고 어떤 판단을 해야할지 사고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옆에서 누군가가 소리치지만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곧 몸에서 느껴지는 충격으로 바닥에 넘어지며 칼에 찔리는 듯한 기분나쁜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소리가 나는 쪽을 보았다.
괴한이 내지른 칼을 언니가 나 대신 맞은 것이었다.

"어...언....니?"

 깊게 박힌 칼은 일자를 그리며 언니의 복부를 유린했고 만족스러운 얼굴을 한 괴한은 다시 먹잇감을 찾기 위해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힘없이 무너지는 언니의 몸을 받아내고 다급하게 상처부위를 막았다.

"어..언니..! 빠....빨리..구..구급차를...거기 누구 없어요?!"
"진정..쿨럭..해 은아야.. 심호흡 하고.."
"어..어떻게 지금 진정하겠어! 말 하지마! 상처난곳 위험하니까!"
"미안..은아야.. 언니가 힘이..있었으면...막았을텐데..쿨럭!"
"바보!! 말하지 말라니까!"

 주위는 수많은 사람들의 비명소리로 가득했다.
그 와중에 몇몇은 냉정을 잃지 않고 신고를 하였고 남자들이 모여 괴한들을 제압하고 있었다. 
상황이 정리될 무렵 경찰과 구조대가 도착하였다.

*

 내가 겪은 끔찍한 일은 '대학로 흉기 난도질 사건' 이라며 다음날 신문기사 1면을 채우는 등 이슈화 되었다.
사망자 약 12명, 부상자 약 20명. 그날 나 대신 칼에 찔린 언니는...이젠 볼 수 없게 되었다.
 내가 그 때 겁에 질리지만 않았어도 언니는 무사했을텐데.. 하다못해 내가 응급처치를 잘 했더라면..

 그 일이 지나고 난 후 몇 주가 지났다. 그 사이 언니의 장례식이 치뤄졌고 나는 혼자가 되었다.
나때문에 소중한 사람이 죽어버렸다. 나때문에.. 내가 죽인거야..

 당연하게도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전처럼은 아니지만 그래도 연기를 계속했다.
거짓 미소를 보여주고 거짓된 친절을 이어간다. 하지민 역시 집에 오면 모든게 텅 빈것같다.
 
 여름방학이 시작되어도 나는 집안에만 있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고 심지어 밥도 먹지않았다.
의지할 곳이 없어진 나는 이제 어쩌면 좋을까. 좋아하던 책도 손에 잡히지 않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적도 많다.

 간혹 오는 연락도 받지 않는다. 집에 초인종이 울려도 나가지 않았다. 머리가 복잡하다. 수많은 생각이, 충동이 이리저리 뒤엉켜 풀어지지 않았다.
분노, 자기혐오, 무기력함, 슬픔의 물결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 결국 감정의 파도에 휩쓸려 의식이 완전히 점멸했다.

*

 시끄러운 거리의 한복판 많은 사람들 중에 나와 언니가 있다. 거리는 활기가 넘처흘렀으며 모든 사람이 즐거운듯 표정이 밝았다. 
하지만 곧 그 들뜬 분위기가 유리깨지듯 찢어져 흩날렸다.

 언니가 나에게서 멀어진다. 웃고있었지만 어쩐지 슬퍼보인다. 어디가는거야?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물었다.
언니는 등을 돌리고 나를 돌아봐주지 않는다. 쫒아가려고 애를써보지만 누군가가 발목을 붙잡고 있는것처럼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목이 터져라 외치지만 당연히 닿지 않는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언니를 부르는 것, 따라가는 것. 어느새 언니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무기력, 절망, 슬픔을 시작으러 부정적인 생각들, 부정적인 감정들이 겉잡을 수 없이 커져간다.
귀를 막아봐도, 눈을 감아도, 소용이 없었다. 나에게는 이미 제어가 불가능하며, 억누를 수도, 어디에도 쏟아낼 곳도 찾을 수 없었다.

 하염없이 어두운 공간을 걸어나간다.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어 차라리 나도 죽여줘..

 ..언제 잠들었던 걸까.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거실 바닥에 누워있었다.
그러고보니 방학이 시작되고 나서 몇일이 지난걸까? 달력도 시간도 보지않고 멍하니 시간을 죽이기만 한지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피로에 비틀거리는 몸을 일으켜 핸드폰을 찾는다. 방에 굴러다니던 핸드폰은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며 시위하는듯 배터리가 없어 켜지지 않았다.

 대충 충전을 시키고는 전원을 켜보니 문자와 부재중 전화가 셀 수 없이 많이 와 있었고 내일이 개학일이었다. 학교..가야만 하는걸까. 아니 가야지.
화장실로 가서 거울을 보았다. 거울에는 윤기나는 긴 검은색 생머리 대신 푸석푸석하고 이리저리 뻗혀 보기 흉한 머리를 가진 소녀가 비췄다.
얼굴은 생기가 없었고 눈빛도 죽어있었다. 일단은 몸을 씻었다.

 샤워를 마치고 문득 몸의 상태를 보니 많이 야위어 있었다. 그래도 몸은 옷으로 가리면 되니까 딱히 상관없다.
하지만 눈 밑의 다크서클과 피로함이 얼굴에 나타나는데 이건 어떻게 해야하는 것일까.
화장을 하고 가자니 나는 학교에 화장을 하고 간적이 없어서 할 수 없다. 그리고 솔직히 하는 방법도 잘 모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까. 거짓말을 하면 그만이다. 아니 어자피 다들 멋대로 생각할테니 거짓말까지는 할 필요 없으려나.
그냥 평소대로 거짓된 자신을 연기하면 될거야. 밝은 척 웃어주면 다들 나에게 몰려들겠지.

 예상대로 다들 나에 대한 인식은 변함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나 자신이려나.
그간 규칙적인 생활 패턴을 지켜왔던 내가 방학동안 그 생채리듬이 망가져서 나답지 않게 수업중에 졸았다.
다행히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듯 지적을 하거나 걱정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앞으로 커피라도 마시면서 버텨야 될것 같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달력이 바뀌면서 점점 내 몸과 정신은 망가져만 갔다.
기운이 없어 항상 피곤하고 식욕이 사라졌으며 대신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생활이 불가능했다.
무기력함에 무언가를 할 의욕이 나지 않았고 당연히 수업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기억력도 점점 떨어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동안 쌓여있던 스트레스가 한번에 밀려오는것 같았다. 머리속은 엉망이고 하루종일 환청이 나를 괴롭힌다.
저녁에 잠도 잘 오지 않았으며 잠에 빠져들면 어김없이 생생한 악몽을 꾸었다.
나를 지탱 해줄 언니의 존재가 없어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도 신기할 정도로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고 쇠약해졌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학교 선생님이나 아이들은 내 변화를 한참 전에 눈치챈듯 했다.
실수를 해도, 뭔가를 잊어버려도 싫어하거나 실망하기는 커녕 오히려 걱정을 해주고 있었다.
나는 항상 모두를 의심하고 경계하면서 지냈었는데 진심으로 다들 나를 좋아해주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나는 지금까지 뭘 위해서 가면을 쓰고 있었을까. 물론 그 가면으로 인해서 긍정적인 결과를 얻었지만 모두 부질없는 것이었다.
굳이 거짓된 내 모습을 내보이고 진짜 내 모습을 숨기는 생활을 고집했어야 할까.

 이제는 모든걸 내려놓고 쉬고싶어. 무관심 사이에서 학대받고 자라왔던 유년기의 과거를 잊고,
괴로운 기억을 잊으려 가면을 쓰게 된 현실을 잊고, 사랑받고 관심받을 수 있는 곳으로 가고싶어.

 그래 눈을 감자. 모든 생각을, 기억을 내려놓고 꿈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자.
깨어나지 않아도 좋아. 이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다면. 자, 그러면 이제부터 끝을 알 수 없는 여행을 시작하자.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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