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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광기)피묻은 흰 손수건.

2019.04.15 12:10 조회 수 9

 


참혹하다.



그냥 이 말 말고는 이 광경을 부를 게 없다.





서로의 가슴팍에 창을 찌른 채 쓰러진 모습들.

머리가 바위에 짓이겨지고 화살을 맞은 모습들.

서로의 자매의 머리카락을 쥐어뜯다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물어뜯으며 숨을 거둔 모습들.

..



사방팔방 온갖 증오와 악의의 마지막 순간 모습들이 멈춘채.


음침한 하늘 위로 까마귀들만이 잔치 만난 마냥 시끄러이 울며 배회하고 다닌다.


..




횃불에 의지해도 보이는 건


흉물스런 먼지, 피고름, 살점, 육식파리들만이 드넓은 땅 가득 채운 참혹한 시체 바다들.


고풍스런 갑주도, 투박한 갑주도, 무딘 갑주도.

모두 예외 없는 곳.




..



한 가운데 쯤 아무 기대할 것도 없는 기분 앞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놓여있는 피묻은 흰 손수건.




이미 바짝 마른 피맺힌 흰 손수건은 제법 화려한 무늬가 수놓아져 있지만 역시 마른 핏자국이 기괴함을 느끼게 한다.




가만.

무슨 냄새지.


묘한 냄새인데.




썩은 내만이 가득할 곳에 묘하게 풍기는 향기. 그 향기에 이끌려 주위를 살피지만 인기척 없는 황량의 땅.



아니, 정확히는 손수건에서 나는 향이었다.



이끌리듯 쥔 손수건.


그리고 뭔가 깊게 맡아보고 싶은 향..을 코 앞에 갖다대니.



..





















백의의 눈물을 흘리는 벌벌떠는 여인과 소녀.


무심히 스르릉 소리를 내며 눈앞에 나오는..이삭이 가득한 논 풀을 베는 낫?



..


작은 단말마 비명소리와 쭉 짜내지며 피가 가득해지는 단지.


거기에 방금 자른 듯 낫의 머리를 닦는 손길.



그리고 다시 한번 닦는 듯 피 가득한 단지 안에 낫 머리를 담갔다 빼고 흰 손수건으로 쓱 닦는 손길.




..


엄청난 함성 소리와 성난 눈길들.

잘 벼려지고 갈아진 번뜩이는 창칼들.



이를 내려다보는 듯한 높은 첨탑 위에서 손길은 손수건에.


작은 병을 꺼내 살짝 안의 물을 붓는다.


축축한 손수건을 허공으로 날린다.





..


i15520847116.jpg

아우와 형이 서로의 가슴에 창을 꽂고,

언니와 아우가 서로의 머리카락을 뜯어대며,

부모와 자식이 서로의 살점을 물어뜯어대고

아기는 칼에 저민 뒤 불에 지지고, 노인은 쇳물을 뒤집어 씌운다.



..



전쟁은 이쪽은 피 몇방울만 흘리고 너무나 싱겁게 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