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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문학 속 사랑의 아이러니.

2019.01.01 15:41 조회 수 6 장작추가 1 / 0

서양에서 흔히 소재로 삼는 사랑물에 '로미오와 줄리엣'이 인기가 많다. 근데 여기에 못지 않은 이야기가 있으니 바로 '트리스탄과 이졸데'다.



-왕의 명령으로 이졸데를 구한 트리스탄. 그러나 트리스탄은 이졸데 가문의 원수. 그를 죽이려 하나 그를 보고 오히려 넘어가버린 이졸데. 


또 왕의 왕비가 된 이졸데는 몰래 트리스탄과 정을 나누다 사랑의 도주를 해버리고 그들을 쫓은 왕은 둘이 처음 만난 계곡에서 둘 사이의 '검'이 놓여있은 채 자는 모습을 보고 돌아간다. -



여기서 왕의 행동이 의아할 것이다.


자기 왕비를 뺏어간 것도 모자라, 자신의 부하가 왕의 명령까지 어기다니 찢어죽여도 시원찮을 것이다. 근데 둘 사이의 '검이 놓여있는 채 자는 모습'에서 왕은 돌아갔다. 이 무슨 영문일까.



하던 지랄도 멍석 깔면 안한다.


라는 속담이 있다. 일반적 소시민들의 기준으로 보자면, 아니 그보다 한국식 표현이라면 '억압받는 한국 학생'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쉽다. 그리고 '수능'만 끝났다하면 벌어지는 모습들, 그리고 대학 입학 전까지의 광란(?)을 떠올리면 쉽다.


인간은 억눌리고 제재를 받고 금지된 것에 쉽게 열망하는 기질이 있다. 이는 뒤집어서 '그냥 놔두면' 그게 귀한 줄 모른다. 여기에 더해 현실의 지족하고 냉혹한 바닥에 널부러질 때 그 밑천이 드러나게 된다.


그 예가 '조신의 꿈'이다.



절의 스님 조신은 꿈속에서 인간지사의 고통을 깨닫는다.


젊음도 시간이 지나면 흐려지고, 콩 한 쪽도 나눠먹는 것도 계속된 굶주림에 고통 받으면 헤어짐을 기뻐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 무슨 역설인가. 얻기를 고매하며 안될 것처럼 여겨진 게 얻어지고 굴리는데 삶의 매운 맛 앞에 부질없고 오히려 증오의 씨앗이 되다니.



허나 답은 간단했다.


'금지된 것에 열망하는'이란 것을 일찍이 알았던 것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죽음으로써 역설적으로 '영원히 사랑'을 늙기 전 이어갈 수 있었고.


조신은 그런 고락에 인간 모두가 고통에 허우적댄다는 '팩트'를 깨닫고 용맹정진하며 진리의 깨달음을 향한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모습을 본 왕이 돌아간 것은 이와 마찬가지로 '서로 검을 사이에 두고' 실지로는 이어지지 않음을 걸고서라도 사랑을 이어가겠다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모습에 어떤 방해들이 의미가 없다 여기며 떠난 것일 지다.




그 왕의 직감이 맞았는 지, 다른 판본에서는.


-흑발의 이졸데에게 장가 들은 트리스탄은 그 뒤로도 금발의 이졸데를 잊지 못하는데 그걸 질시한 흑발의 이졸데가 트리스탄을 죽이고,


금발의 이졸데가 황급히 왔으나 죽은 트리스탄 옆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라고 적혀있다.



참으로 조신의 '경고'를 듣지 않은 이야기 인물들이 맞는 '합당한' 결말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