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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계약 (1장)잘못된 얽힘-상.

2017.07.14 11:21 조회 수 21 장작추가 1 / 0

덜컹덜컹.


절그럭절그럭.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 까. 

이젠 눈을 뜬 채 있는 것도 힘들다. 자꾸 죄여오는 쇠사슬, 흔들리는 쇠창살 가축 우리. 꼼짝 없이 붙잡혀 있는 흰여우족 소년의 멍해진 입가에서 침까지 흐르고 있었다.



"케헤헤. 이게 뭔 횡재라냐."

"그러게 말이야. 저번엔 크고 튼실하고 싱싱한 흰여우족 암놈 하나 잡았는데 오늘 싱싱한 새끼 한 마리까지. 재수가 좋군~!"



비열한 웃음소리와 늑대털 냄새.

빌어먹을. 말은 안나오지만 정신은 번쩍 뜬다. 바로 엄마의 원수들이 눈앞에 있다는 걸. 그러나 지금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실수였다.

상대는 흰여우족의 최대 적이자 우주에서 악명높기로 소문난 밀렵꾼 종족인 늑대인간 놈들이다. 힘이나 덩치에서 모두 큰 이들은 거기다 겁이 없고 날쎄기까지 해서 소문난 사냥꾼들로도 악명이 높다. 그래서 우주곳곳을 돌아다니며 희귀 동물이나 생물을 사냥하고 그걸 상류층들에게 넘기는 일을 주업으로 하고 산다. 

아니, 이들이 이런 능력만 가지고 어찌 악명 운운하는가 하는데 맞다. 이런 건 다른 종족 밀렵꾼들도 크든 작든 갖고있다. 그럼 어째서?


답은 그들의 '코'다.


냄새를 기똥차게 맡는 것도 모자라서 온갖 냄새가 뒤섞여도 거기서 찾을 냄새를 골라서 찾아내는 능력이 뛰어나다. 많은 흰여우족들이 늑대인간들한테 붙잡힌 것도 이 때문이었다.

 개중에 정신이 나간 늑대인간 놈들은 자기 코를 뭘로 개조해가지고 암놈 것만 냄새를 잡는 걸 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지금 보니 사실이다.



"킬킬킬. 진짜 비싼 돈 두고 만든 코가 쓸모가 있긴 하다니깐. 글쎄, 그 멍청한 암놈이 머리에 두건만 쓴 채 우리 앞을 지나가고 있었는데..딱! 냄새가 났단 말이야."

"멍청하긴. 옷까지 자기 몸을 숨기고 있었다구."

"헹! 뭔 상관이야. 어쨌든 잡았으면 그걸로 땡이지. 크크크크~."


좀 뇌가 이상해지는 단점이 있지만 어차피 생활상이 걸어다니는 멧돼지족하고 맞먹을 정도로 더럽고 불결하고 불규칙적인데다 자기들 끼리도 알력다툼이 일상인 막장들이라 고민하는 놈은 전혀 없다.

그 탓에 흰여우족의 수난은 엄청 났다. 아니, 이들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흰여우가죽이 사치품으로 엄청난 가격에 거래되면서 이들을 잡기 위한 최대 적인 늑대인간족들 많은 놈들이 자기 애먼 코를 흰여우족 잡이로 특화를 시켜댔다. 덕분에 타종족들보다 훨씬 흰여우족을 잡아대는 건 좋았는데 다른 희귀 생물을 얻는 일은 게을리 했다. 

그러나 원체 일단 발견하기만 하면 잡기도 쉽고 팔리는 돈도 어마어마해서 자기들 게을리한 걸 메꿀 수 있다 여겼다.



"아니잖아. 옘병. 망할 흰여우놈들은 새끼도 안치는 지 좀체 봐야 말이지."

"크크큭. 맞아. 저번에 잡아간 암놈도 사간 놈들이 가죽보다 봤어? 잡고서는 털가죽을 밀어버리고, 그 다음에는 얼른 엉덩이에다가 주사기를 꽂더니 뭔 희멀건 게 들어가는..크으, 그 암놈 얼굴 변하는 건 진짜 잊지못할 구경거리였지. 산 놈들도 눈이 동그래져서 그걸 낄낄대며 구경하는 꼬라지도."



심각한 문제는 계속된 남획으로 흰여우족의 개체수는 급감하게 되고 가죽의 가격도 천정부지로 치솟게 됐으며, 다른 밀렵꾼 종족들도 가세하다 보니 그야말로 사방팔방이 흰여우족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 투성이가 되버렸다.

 곳곳에서 남획 뿐만이 아니라 싱싱한 암컷의 경우 강제임신을 시키는 시도들가 생겨 최근 흰 가죽 밑 붉은 병변 현상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빌어먹을. 복수도 못하고.'



쇠사슬에 꽁꽁 묶인 채 쇠창살 가축우리 바닥에 널부러진 흰여우족소년은 분노의 치를 떤다.

 엄마를 잃은 것도 분한데 엄마를 빼앗아간 원수들 손에 또 붙잡혀 팔려가는 신세. 그리고 엄마는 멍청한 게 아니었다. 순전히 자기 때문에 목숨을 잃으셨다. 멀리 늑대인간족이 다가오니 엄마는 아이 대신 나선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비극. 

아이는 스스로 입을 막고 엄마가 끌려가고 뒤를 쫓아 엄마의 마지막 비참한 모습과 고깃덩이처럼 화물에 실려가는 것까지 다 봤다.


죽여버릴 거다. 저 원수의 늑대인간 놈들과 엄마를 사갔다는 놈들 까지. 그리고 이런 세상 전부.



덜컹.


"뭐야? 저것들? 왜 길을 막고?"

"하아, 이거 골치 아프네. 야, 갈길 바쁘니 얼른 해치우고 가자고."



갑자기 멈춘 차와 늑대인간 밀렵꾼들의 짜증소리들. 그리고 운전석에 둔 총을 꺼내 장전하는 소리와 문을 거칠게 열고 닫는 소리가 들리고 잠시 후 건들건들 뭐라뭐라 악다구니 칠 자세를 잡는 늑대인간들의 목소리가 희미히 들리다가.



크아아악!!

탕탕!! 써겅! 철퍽!



귀를 찢는 늑대인간들의 절망섞인 비명소리와 꽤 다급한 총소리. 그리고 뭔가 예리하고 날카로운 것에 고기가 썰리는 소리와 함께 차 유리창에 검붉은 덩어리가 쿵! 소리를 내며 부딪힌 모습. 대체 무슨 일이? 


그보다, 분명 굳게 잡긴 차 안인데 몸 전체를 감도는 스산한 한기가 사방에서 조금씩 밀려왔다.그리고 멀리서 천천히.



저벅. 저벅. 저벅.



매우 느긋한 발걸음이 이리로 오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