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logo

(최종 단편작)기괴한 연금 계약.

2018.02.04 14:31 조회 수 12 장작추가 1 / 0

(길고 깁니다.)



---------

Doronjo-yatterman-22092766-800-1130.jpeg

"저는요. 정말 이 이야기들을 좋아해요. 제가 이 세계에 오기 전 세상에서 이 전단지를 봤는데요. 시험보고 들어오고 나서 금융상품 영업을 뛰기 시작했죠. 정말 여기선 이런 것들을 수도 없이 볼 수 있답니다."



빨간 가면이 걸려 있다고 봐도 이상하지 않을 법한 안경과 그에 반해 말끔한 정복의 여자는 술술 이 세상에 대한 칭찬을 나열한다.

 가끔 그녀의 유혹적인(이것도 진부한 영업 방식이라고 하소연하는 여자의 말) 훤한 가슴팍의 골자기 모습에 눈길을 주는 걸 제외하고 그녀가 내민 '연금 가입서'의 내용을 살핀다.



"가입만 하셔도 되요. '인생 최종 품위를 보장'에 그 때까지 '연금'을 지급하니 이만한 상품은 어디서 구경 못합니다."



그녀의 손톱 화장이 짙은 손가락으로 전자판 위를 가리키는 곳을 살핀다. 상품 상세 내역이 줄로 줄줄이 있다. 당연 보지 못한다. 이 긴 걸 누가 볼까. 가장 중요한 곳은 그녀의 손톱만큼 '짙은' 표시를 해놓았다.



-인생 최종 품위 보장


"이게 뭡니까."


"아, 그거요? 음음. 정말 간단해서 대부분 여기에 시험을 쳐서 온 이들은 이것보다 '연금' 부분에 상담을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역시 '특별 초대'를 받고 오셔서 그런가."



그녀는 질문에 의외라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으나 금방 심드렁히 턱을 괸 채 다른 한 손으로 짙은 글씨가 된 '인생 최종 품위 보장'이라는 걸 누른다. 

다시 여러 문양을 누르는 것을 어지러이 누르는 걸 봐서 비밀번호 같은 걸 누르는 모양이다.



"좀만 기다려주시길. 이것까지 쓸 때가 있었다니 참 재미있네요."


그녀와 상담하고 있는 이 가게는 유흥지구에서 외부에 탁자를 놓은 가게다.

wadim-kashin-cybseq-street.jpeg

 퇴근 시간대인지 시끌벅적한 안보다 오히녀 길거리 군중이 바글바글한 밖이 더 그나마 조용해 보여서 그녀의 상담 내용을 듣기 편해 제안했다.  그녀는 흔쾌히 수락했고 가게 밖 탁자에 자리를 잡고 상담을 시작했다. 그러나 생각지 못한 건 삶의 연속일까 주위 것일까. '특별 초대'라는 금색 테두리에 검은 바탕과 알 수 없는 문양이 그려진 편지 봉투를 보여주니 그녀는 가게에 마실 것과 단촐한(주문표에서 가장 숫자가 적게 적힌 것이니 틀림없다) 간식을 주문했다. 

 돈은 자기가 다 낼 거니 걱정하지 말라는 걸 증명하듯 음료와 간식을 가져온 기계 점원에게 자기 '신분거래연동증'을 넘겨줬다. 기계 점원은 아무 대꾸 없이 그걸 가지고 계산대에 넘겼고 계산대 점원은 자기 일을 한다. 이제 먹을 짬인데..



"아, 역시 여기에 오면 항상 이게 최고라니깐."



부담스러울 정도로 식탁이 넘친다.

형형색색 과자는 그렇다쳐도 손으로 들 수 있나 고민될 만큼 큰 잔에 꽉꽉 가득 담긴 음료. 진한 향과 독한 술냄새가 섞인 음료가 담긴 잔의 안에선 거품에 따라 알 수 없는 부유물들이 둥둥 떠다닌다. 이따금 부유물이 잔 맨 위로 올라올 때마다 거품이 잔 옆으로 새는 모습도 본다. 

술(임이 틀림없다)잔 옆 가식은 주문판의 숫자(생각해보니 사진도)만 보고 단촐하다 생각한 건 큰 오판이었다. 족히 그녀와 마주 앉은 자리 배치에서 양옆으로 내놓은 공간이 다 찼다. 형형색색에 여러 기괴한 모양과 달콤한 꿀에 담갔다 나온듯한 단 내가 확 풍기는 간식들. 본 음식들을 주문했다면 어찌되나 궁금할 지경이다.



"편히 드세요. 이게 좀 오랜만에 쓰려니 통관 절차가 있어서 승인을 받아야 하거든요. 보통은 이거 다 알고 오는데."



그녀는 빨대로 음료를 쭉축 마시며 동시에 자기 일에 열중에 들어간다. 그 모습을 보며 잠깐 긴장에 목이 타 술잔을 입에 댄다. 

차갑고 단 맛과 섞인 술의 쓴 맛. 거품을 조금 삼키면 목구멍에서 톡톡 튀는 느낌. 부유물이 혓바닥으로 입 천장에 눌러보면 나오는 고소한 기름. 이 뭔 조화일 까. 뭐 이 세계의 입맛은 이게 잘 팔린다니 내놓은 것이라는데 그런다고 주문판에 보면 이렇다 표시 겸 광고가 5가지가 된다. 결국 자기 입맛대로지.



"잘 드시는 군요."


"딱히 입맛을 가리는 편은 아닙니다. '영 못쓸' 걸 빼면 말이죠."


"그건 그래요~." 



과자는 어떨까. 과자는 더 어지럽다.

말린 과일 조각을 섞어 구운 과자, 각양각색 설탕 범벅 과자, 튀긴 것도 모자라 그 위에 느끼한 흰 점액질과 소금을 친 과자. 이를 또 찍어먹으라고 가게 비기(?)로 내놓은 8개가 넘는 국물 종지들.이게 간식과 음료다. 다시 그녀와 만난 시점으로 시간 여행 된다면 기왕 본 주문을 걸어볼 까 싶은 생각이 앞선다.



'그건 또 예의없는 짓일까..' 



별 광경은 그녀가 일을 하고 혼자 과자를 집어먹고(찍어먹으면 더 감칠맛이 난다) 있을 때도 이어졌다.


여기는 유흥가. 당연 젊은 피가 끓어오르는 곳.


슬쩍 길가의 풍광에 시선을 돌리면 정말 열기와 알 수 없는 야릿한 기운이 가득하다. 퇴근 시간대 답게 일하는 곳들과는 달리 훤히 자기를 드러내고 다닌다.

 사람들은 삼삼오오거나 홀로 주머니에 손을 놓고 서성이거나. 역시 이 과자들 갯수만큼 모습이 다양하다. 종족도 나열하기 힘들만큼 다양하게 많다. 그냥 여기선 온갖 것을 다 본다고 해도 문제없다. 머리가 편안해진다.



휙~~휘이익~.



보랏빛, 흰빛, 분홍빛, 붉은 빛, 푸른 빛, 각 색들이 등불들이 가득한 이곳은 배경만 어둑하다는 거 말고 눈을 어지럽게 한다. 돈 많이 들어갔을 테다.또 온갖 '봉사(?)'란 것을 간판에 내건 입구에 쉴 새없이 사람들이 들락날락 하는데 제지는 그다지보이지 않는다. 기계 파수꾼만 꾸벅꾸벅 의미없는 허리굽힘만 한다. 

분명한 건 그 안을 들어갔다 나온 이들은 남녀 불물 얼굴이 상기되고 눈이 반쯤 풀려 키득댄다는 것이다. 좀 보는 이에 따라 소름 돋을 만큼.



"오래 기다리셨죠. 다됐습니다."



그 사이 좋은 구경했습니다 라고 답하는 건 너무 저질 농담이란 생각이 들어 대꾸 않고 그녀가 넘겨주는 전자판을 보자마자 눈을 의심했다.



lost_castle-992x1402.jpeg

여기 퇴폐적이고 시끌벅적한 곳과는 전혀 다른 '순백'이라고 불려도 이상하지 않은 곳. 너무 꿈같은 곳이라 이 여자가 좀만 음료먹고 취해서 이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뭔.."


"원하시다면 여기 '관광'도 하실 수 있습니다. 아아, 저도 오랜만에 지난 번 30살 되서 20살 때 첨 본 이 후로 간만에 가봤더니 정말 그 때 그 기분 그대로 있더군요. 좀 비용이 들긴 했지만..후훗. 지금은 상관없게 됐지만요."


"아니, 아니요. 뭐하는 곳이기에 '인생 최종 품위 보장'이라면서 여기를 보여주는 겁니까. 여기서 은퇴하고 설마 놀고먹는다는 말씀입니까."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녀는 의심하는 눈초리를 지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럴리가요? 음, 정말 특별 초대 인사이신 지 전혀 모르시는 군요. 제 것부터 보여드리죠."



그녀는 별안간 오른쪽 가슴팍 옷깃을 만져댔다. 순간 벌어진 일이라 당혹스러워 얼른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옆으로 돌리는데 그 모습이 그녀는 재밌어 보였는 지 오히려 부시럭 소리나도록 더 요란을 피워댔다. 

 근처 지나가는 젊은 남자들의 휘파람 소리가 나는 걸 보면 분명한 '상상'이 맞는 모양이다.



"네, 눈 뜨셔도 돼요."


"뭐, 뭐하시는 겁니까 도대체. 사람 가득한 곳에서."


"상관없어요. 제가 영업하는 방식이니까요. 안되면 못버는 거고 되면 저같이 높은 위치에 오르는 거니까요. 걱정마세요. 전 20살 때 '종자번식해체 제도'를 해서 탈이 날 일이 없어요. 근데, 보기보다 얌전한 편이시군요. 보통 건들겠다고 손을 내미는 경우들이 많은데 고객님은 참 후훗."



영업 방식, 높은 곳, 20살 때 '종자번식해체 제도'. 물어볼 게 더 많은 이상한 곳 못지 않게 이 상품과 그 사진의 연관을 알아내야 할 참이다.

 굳은 마음으로 '실눈'을 뜨는데 아쉽게도(?) 중요한 곳은 교묘히 옷깃에 가려져 있고 가슴 살덩이만 보이게 하는 '치밀함'을 봐서 이 여자는 확실히 전문가가 틀림없다.

방금 전 옷 상태에서는 몰랐지만 문신처럼 윗 가슴 쇄골 쪽에 정체 불명의 까만 문양이 그려져 있다. 또 숫자 35까지.



"전, 35살에 저곳에서 '품위 있는 끝'을 맞을 거거든요. 이 문양엔 전자증명이 있어서 그냥 이걸 보이는 것만으로도 절차가 진행된답니다."



이젠 눈보다는 귀와 머릿 속 생각이 잘못 했나 싶었다. 품위 있는 끝?



"품위 있는 끝이라니..?"


"네, 그래요. 아, 한 때 이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생명존중새싹운동'이라는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폐지해야 한다고 목청 높이던 얼.간.이.들이 있었죠. 세상에나~. 늙어 죽을 권리가 있다고 한다니 제정신으로 그런 망발들을 지껄이는데 어떻게 생각해요?" 



번뜩 떠올리는 촉이 맞다면 분명하다.

여기는 안락사 집행 기관이고 여기는 그걸 처리해주는 곳임에 틀림없다. 

 여기 퇴폐적인 곳과는 달리 훨씬 깨끗하고 안락하며 관련 사진들을 보니 첫 사진처럼 깨끗하고 말끔한 흰 복장의 사람들이 침대에 앉아있는 대상자와 웃으며 있다. 시설들도 깔끔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자연 경관을 배경 삼는 곳이다. 

전자판 사진과 그녀를 번갈아 보며 드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어쩌면 따귀를 맞을 각오이기도 하지만 이쪽 신분이 '특별 초대 인사'라니 권력을 한번 휘둘러본다고 할까.



"주제 넘은 짓이지만. 당신처럼 멀쩡하고 능력있고 매력..보다 더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딱 '누군가를 애끓게 만드는 몸'을 갖고 있으신데 왜 끝을 낸다니요. 아깝다는 생각 안드십니까?"



뭔 생각으로 이걸 내뱉었는 지 모르지만 적잖이 놀란 그녀의 표정을 보니 분명 잘못했음이 틀림없으렸다. 

곧이을 불 찜질을 예상하고 또 눈을 질끈 감고 양 주먹을 꽉 쥐었다.



"푸..푸하하하~! 아하하하! 아, 너무 재밌다. '도시얼간이사연모음방송'보다 더 재미있어~! 꺄하하!!"



 예상과는 너무나 틀린 반응.

그녀는 탁자를 연신 치고 자기 배를 잡으며 그야말로 자지러지게 웃어댄다. 요염하게 대하려는 처음 대면과는 너무 다르게 지금은 정말 '순수히' 웃는 모습이다.



"하하..하. 아, 정말 내가 이 맛에 이 일을 못끊는다니깐."



그녀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직 반컵 남은 음료 잔을 입에 대고 그대로 벌컥벌컥 들이켜댔다.

 술에 취기 탓인 지 꼴딱꼴딱 대는 그녀의 목 움직임에 시선을 못떼는 건..


탕.


"꺼윽."



트림도 눈길이 가게 한다. 그만 마셔야 겠다.

 아직 남은 잔을 홀짝이는 중에 여기를 게슴츠레한 눈으로 보는 그녀는 나직이 속삭였다.



"고개님은 정말 특별해요. 사람들과는 달리. 처음 볼 때부터 그랬어요."


"미안합니다. 이상한 소리해서."


"전혀요. 근데 여기하고 하나도 어울리지 않는 두터운 먼지가 낀 외투나 모자, 이 땀 냄새. 무엇보다..옆에 매달고 다니는 그거 '도끼'라고 하지요? 제가 시험 공부 당시 옛 과거 유물 과목에서 봤거든요."


"네. 근데 과거 유물 과목이라..이건 그냥 별 볼일 없어요. 여기는 더 뛰어난 자르는 도구가"


"아뇨. 거기 기록을 보니 '자루없는 도끼로 하늘을 떠받힐 기둥을 찍는데 쓴다'라고 하는 고대 자료 같은 게 있더라고요. 그게 뭘까요?"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인다는데 그녀는 게의치 않고 반짝이는 눈빛을 지으며 대답을 기다린다. 알고 있어도 의미없는 짓이란 생각에 쓴웃음을 지으며 술을 홀짝였다.



"글쎄요. 그냥 할 일 없는 이가 술취하다 흥얼거리는 막 이야기겠죠."


"정말로요?"


"..네, 분명합니다."


"거.짓.말."



급작스레 정색하며 대꾸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놀라 마시던 술의 부유물이 목에 걸릴 뻔했다. 

여태껏 분위기와는 달리 날카롭게 빨간 안경 너머 이 쪽을 예의 주시하는 눈빛이 심상찮았다.

 그러고보니 '생명존중새싹운동'이란 괴단체 이야기를 한 걸 떠올리니 잘 못 걸렸단 생각이 들었다. 아주 혐오하는 그녀의 말에 비추어 그다지 좋은 곳은 아님에 분명한데, 맹세코 그 단체와 일면식도 없다. 허나 그건 이 쪽 생각. 

 억울함을 내비치는 게 나을 까 거짓말을 진짜 할 까 여러 생각이 오고갔다. 홀로 구석에 몰린 이는 암만 머리를 굴려도 답이 안나오니 될 대로 되라 심정이다.



"그 이야기는"


"나와 여럿 밤 같이 보내보실래요?"


"느..예?"



이쪽의 반응을 떠보는 듯한 피식 웃는 그녀의 분명한 어조에 잠시 혼란이 왔다.



"지금 무슨 말을"


"많이 취하셨네요. 역시 그걸 해소하는데는 땀을 진하게 흘리는 게 최고죠."


"그만."



순간 울컥하는 기분에 남은 술을 한번에 다 들이켰다. 이번엔 양손으로 턱을 괸 채 이쪽을 그녀는 느긋이 볼 뿐이었다. 잔을 좀 세게 탁자에 내려놓으며 한숨을 푹 쉬었다.



"하아, 정말 이곳은 이상해요."


"흐음, 그럴까요. 지내다 보면 그냥"


"이 편지, 당신, 그 연금이라는데 결국 고통없는 죽음을 보장해준다는 곳, 또..도저히 이해가 안가는 건 얼마 됐다고 그런 제안..아니, 어지럽네요."



그냥 술이나 한잔 더 시켰다.

바보 멍청이 구제 및 '서는 것' 불능. 보통이라면 당장 응해야 하는 걸 뭔 세상 구원이라는 것도 아니고 별 볼일도 없는 처지에 잘난 척일까. 두고두고 욕먹어도 쌀 위치. 줘도 못먹고 굶어 죽을 어리석음.


-주문하신 음료-


"금화로"


"제 거래증으로요."


"제가 시킨 거니 제가 낼 겁니다."


"이 분 말 안들으셔도 돼요. 그냥 계산해주세요."


-네, 무시하고 계산하겠습니다-


"내가 여기 단골이거든요."



이겼다는 듯 두 손가락을 펴는 그녀는 과자를 한가득 집어먹으며 오물거렸다. 다시 술잔을 집어 한 모금 들이키며 생각해도 뭔 짓이든 의미없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 문제 덕분에 합격했거든요."


"?"


"그 문제는 이랬어요. '도끼와 관련된 고대 문구와 관련 있는 어구는'이래서. 시험 공부 당시 그게 정답이라 하고 맞췄죠."


"그렇게 중요한 가요?"


"점수 하나 차이에 당락이 왔다갔다 하니까요. 그 끔찍한 시험 공부 계곡은 정말 생각하기도 싫어요. 불결하고 짜증나고. 툭 하면 위로랍시고 찾아오는 거지비렁뱅이 운동놈들. 얼른 나가야한다는 생각만 가득했죠."


"..시험이라면."


"여기는 20세 부터 이 세계에 들어오는 시험을 치뤄야 해요. 당연 합격 점수가 높아 많이들 떨어지죠. 뭐 제가 있을 때는 그래도 합격자 수가 많았던 지 자살한 이가 제가 있던 곳에서는 고작 '134'명 정도였어요."



어째 그 때 안좋은 기억이 있다는 듯한 눈빛을 보니 슬쩍 미안한 감이 들어 술을 먹다말고 잠깐 멍하니 있는 사이 그녀는 심드렁히 과자를 또 먹는다.



"뭐, 이젠 과거 이야기에요. 더는 썩어빠진 그곳보다 여기가 더 좋고, 지금이 좋아요. 방금 인생 최종 품위 보장과 함께 '연금' 얘기하셨죠?"


"그렇습니다.""가령 그 이야기에서 '미녀요정'이 여기서 가입한다면, 매달 2075만원을 수령 받아요."


"네..?"



그러니까 미녀요정은 가입 즉시 매달 75만원의 추가 수당을 연금 공단에게서 받는다는 것이다. 딱 봐도 공짜로 돈을 주는 거나 다를 바 없는데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체 그 돈이 어디서 나오기에"


"저라고 그걸 그냥 넘길까요. 보다보니 정말 기가 막히도록 틀이 재미있어요. 어때요. 알고 싶어요? 그래도 보기보다 머리는 있으시니 제 '부탁'을 과연 받아주실 지 말이죠. 네, 부탁이에요. 요구가 아니라."



부탁일 정도. 그냥 포기한다.



"자루없는 도끼는 당신의 은밀..아니 당신과 몸을 섞고 당신에게 '박을'? 아니군요. 제 입장이군요. 당신 입장에선 '박힘 당할 곳'..그걸 주면 '하늘을 떠받힐 기둥을 찍는데 쓴다' 딱 남녀가 몸 섞고 난 뒤에 세상을 발전시킬 이를 만든다는"


짝! 짝! 짝! 짝!


"정말 대단하군요! 역시, 그 문제의 답의 의미가 그거였다니."



대단한 걸 발견한 것마냥 정말 진심을 다해 박수를 치는 그녀의 모습이 더 위화감이 들었다.



"대체 그리 입에 담기 힘들 걸 듣고.."


"그럴리가요. 저기에서 내놓는 문제들은 은근히 다 의미가 적잖은 것들이 많아요. 저 고대 어구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었는 지 합격 후에 찾아봤지만 죄다 답이 그거다이지 깊은 의미는 찾을 생각들도, 있지도 않았어요."


'은근 생각 없는 곳..아니 시험이란 걸 기분좋게 합격한 이들 빼고는 뭐 그렇겠지.'


"근데, 오늘 당신을 보게 되었네요. 그리고."



별안간 수염이 까칠한 이 쪽 턱을 부여잡고는 슬그머니 가까이 얼굴을 맞댄다. 금방이라도 닿을 두 얼굴의 거리. 그녀는 득의양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내 생각대로였어."


"왜 이러십니까..?"


"당신이 옆에 도끼를 든 모습과 그 모습에서 딱 제 촉이 느꼈어요. 당신이 특별 초대 인사로 왜 높으신 쪽에서 보냈을 까 하고요."


"실수일지.."


"아뇨. 실수가 아니에요. 거기는 실수일 시에 손실이 어마어마해서 죽었다 깨어나도 정확한 것만 해요. 이제야 딱 왜 '이 세상'이 더 우월한 지 말이죠. 그 잘난 운동 멍청이들보다 말이죠."



어디가?



"네, 안락사라고 고대엔 그렇게 불렀죠. 지금은 인생 최종 품위 보장으로 변했지만요. 잔인하다느니 존중이 없다느니 떠드는 놈들이 그놈들이지만 전 하나도 믿지 않아요. 아니 가증스러워요. 그저 떨어진 놈들의 투정으로 보여요."



안경 너머 확실히 느껴지는 그녀의 분노.



"당신의 도끼 기둥 이야기를 들죠. 진짜 이제서  말을 하는데 당신은 정말 여기 비리비리한 것들과는 다른 기운이 있어요. 뭐랄까..넘치는 걸..아니.


그대의 굵직한 '자루 없는 또다른 도끼'를 저의 '자루 없는 도끼 자국'에 찍고 싶지 않아요? 이 옷을 찢고 싶죠? 어서 날 망가뜨리고 싶지 않아요? 침대 위에서 육중한 당신에게 깔린 전 영락없이 짓이겨 지겠죠."



분노와 희열이 담긴 안경 속 눈빛을 어떻게 마주볼 까.



"여기는 정직해요. 모두 그런 짓이 '끝이 있다'는 걸. '늙어 죽을 권리'? 미친 놈들. 늙으면 썩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안된다는 사실을 숨겨요.


도끼로 찍어 죽여버리고 싶지 않아요?"



도끼로 어떻게 짓이겨 버려야 할까.



"제가 당신을 위해 돈을 썼죠? 그 미녀 요정처럼 전 추가 요금을 받아요. 그리고 35세까지, 실컷 당신과 오늘 저녁 즐기듯 다 남부럽지 않게 쓰고 먹고 웃고..같이 침대에서 뒹굴어 보고.실컷 즐기는 거죠."


"거긴"


"우리들의 마지막 피와 힘, 땀이 흐르는 모습을 찍어주는 곳이에요. 늙고 썩은 모습이 아닌."



말을 끝으로 그녀는 자기 입을 댄다. 더는 어떤 대화도 할 수 없는 상황. 뜨겁고 끈적하고 단 과자 맛과 향이 어우러진 혓바닥이 서로 엉키는 입안.


그녀의 말은 다옳다. 그 사이 전자판 서명란에 손을 뻗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