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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살인자의 손길

2017.09.28 15:14 조회 수 9

"살인자의 손 치고는 좀 이상하지?"


 확실히 그랬다. 완벽하게 다듬어지고 깔끔하게 손질된 손톱이 손가락 끝에서부터 정확히 2mm까지 뻗어 있었다. 손가락은 남자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가늘었고, 유사한 점이 있다면 손가락 관절에 나 있는 주름 정도였다. 


비단처럼 고운 피부 밑으로는 마치 고풍스럽게 설계된 회로처럼 서로 연결된 금색 선들이 비쳐 보였는데, 그가 말을 꺼낼 때마다 선들이 번쩍였다. 무심한 표정으로 데이터패드를 만지작거리는 그의 손바닥은 너무나도 부드러워 보였다.


 "하지만 내가 누군지는 너도 잘 알고 있겠지. 나는 사람들이 저 분노에 가득 찬 짐승들에게 희생당하는 것을 보았고, 시민들의 우주선이 야만적인 도구들로 파괴되는 것을 여러 번 보았어. 그래서 나는 그것들을 죽인 다음 시체를 우주에 갖다 버렸지. 아직도 그것들의 비명이 내 머릿속에 떠올라. 레이저 포가 방어벽을 녹이는 동안 난 그것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미소 지으며 지켜봤어."


 "너도 똑같은 광경을 보게 될 거야. 캡슐에 있는 어떤 미치광이가 생명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짓밟는 모습을 말이지. 그 곳에서 너는 일개 도구에 지나지 않아. 불멸하는 파일럿의 의지에 따라 - 뭐, 그의 정신이 복제불가능해질 정도로 망가진다면 또 모르겠지만 - 행동하는 노예야."


 "인류가 우주에 진출하는 순간부터 이미 파괴는 시작되었어. 저 위에서 돌아다니는 반신반인들은 너희들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지. 우리는 파일럿이며, 너희들의 운명을 결정해. 네가 죽은 후에도 우린 계속해서 살아 있을 거야." 


"내 손은 살인자의 손처럼 안 보이겠지만,"


그는 이렇게 말하며 자기 앞에 앉아 있는 젊은 청년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법이지" 


"대답하기 전에 잘 생각해. 만약 네가 이 세상에서 벗어나 별들 가운데서 살려 한다면, 넌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될 거야. 다르게 말하자면, 정신 나간 여왕벌이 지배하는 벌집에서 오로지 함선 유지를 위해 존재하는 한 마리의 일벌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이 비참한 삶을 견뎌낸다면, 언젠가는 너도 행성들 사이를 비행하고 있겠지." 


이 말이 사실이라는 것은 다렌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배틀쉽 급 함선에서 엔지니어 또는 수석 엔지니어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다는 가능성은 그에게 너무나도 매혹적이었다. 그는 이러한 장밋빛 미래에 저항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캡슐 파일럿을 만나게 된 것도 지상 착륙장의 직원들이 3개월 동안 쉴 새 없이 노력해준 덕분에 비로소 가능해졌다. 끊임없는 노력과 운명의 장난이 그를 이 아마르인과 만나도록 허락해 준 것이다. 깊은 한숨을 내쉰 후, 다렌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해했습니다"


 반대편에 앉은 파일럿이 방금 손에 쥐고 있었던 데이터패드를 미끄러지듯 건네 주었다. 


"화면을 엄지손가락으로 누른 다음, ID 임플란트를 점선에다 대고 문질러. 그럼 네 명의가 이전될 거야. 내 선창에 들어갈 때 필요하니까 패드는 가지고 있어. 거기에 들어가면 먼저 갑판수한테 신고해. 그러면 그가 널 근무자 명단에 등록하고 잘 곳을 마련해 준 다음 할 일을 설명해 줄 거야. 열심히 일하면 보상은 반드시 있어. 내 함선에 게으름뱅이들을 위한 자리는 없다는 걸 명심하도록." 


"이제, 내가 다른 일이 있어서 좀 가봐야겠군" 


그렇게 해서 젊은 청년은 혼자 테이블에 남게 되었다. 이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그는, 데이터패드를 마치 자신의 생명처럼 꽉 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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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개월 후, 다렌 아탁시스는 아포칼립스급 전투함 "담-이무드"가 파괴될 당시 사망한 6,340명 중 한 사람이 되었다. 그의 빈 자리는 3일 만에 다른 사람으로 메꾸어 졌고, 가족들은 이에 관해서 아무런 통보도 받지 못했다.





http://bluetyphoon.tistory.com/m/242



역자 : 헥사크론

번역문출처 : http://www.joysf.com/4452886

원문 출처 : http://community.eveonline.com/backstory/hands-of-a-killer/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받았고 '알찬' 내용이 가득한 단편 소설입니다.



드넓은 우주 속에서 '주인공(플레이어)'의 함선에 있는 이의 처지? 아니, 어쩌면 숱한 게임들에서 늘 벌어질 상황들.




그러나 너무나 분명히 '깊이 생각 않는 상황들'.



구체적으로는 '요코 타로' 말대로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상황들-




태평양전의영웅.jpg


재밌죠. 재밌고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