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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당정치 이야기

2016.09.14 11:07 조회 수 118 장작추가 2 / 0

그냥 역사적인 내용(?)으로 이번엔 적겠습니다.


붕당정치라는 것을 아실겁니다. 사실 정치적인 대립이란 것이 어느시대에나 항상 있어온 것이지만... 조선시대의 경우가 붕당정치로 매우 눈에 띄는 모습이지요.


붕당정치가 나오기 이전에....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립이란 것에서 시작이 됩니다.

이제 역사 역주행을 잠시 하겠는데...


훈구파는 세조의 왕위찬탈에 찬성을 한 세력들을 말하고... 이러한 훈구파의 뿌리는 관학파가 되겠습니다.

참고로 관학파는 조선의 개창이후에 초기세력들을 말합니다.

관학파의 뿌리는 고려 말기의 고려를 멸망시킨 후에 새로운 왕조를 개창하는 것을 주장한 급진적 신진사대부입니다.

급진적 신진사대부의 대표적인 예가 정도전이 되겠지요.


사림의 경우에는 고려를 유지시키면서 개혁을 계속하는 것을 주장한 온건적 신진사대부를 뿌리로 두고 있는 것입니다.

온건적 신진사대부의 대표적인 예가 정몽주가 되겠네요.


신진사대부의 뿌리는 고려의 무신정권 시기에 문신들이 싸악 갈려나갔는데... 정작 무신정권을 잡은 이들이 자신들의 한계를 인정은 하면서 소극적으로나마 자신들과 비슷한 처지라고 할 수 있던 "중소지주 재야문신들" 을 키워준 것이 시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인로가 대표적인 인물이 되겠군요.



일단 여기에서 역사의 역주행을 끝내겠습니다. 더 역주행 하다가는... 문신귀족시대를 거슬러서 태조 왕건의 고려개창과 후삼국 남북국(발해+통일신라) 등등으로 계속 가겠네요.



여튼 세조 대에서는 관학파 중에서도 훈구파가 득세를 하였을 때입니다. 세조의 (사실상) 다음 왕인 성종의 경우에는 자신을 넘볼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대립세력을 찾는데.... 이러한 대립세력으로 찾은 것이 "사림파" 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립으로 4번의 사화로 사림이 갈려나가기도 했지만.... 결론은 사림파가 살아남았습니다. (???)


그런데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은 사림파는 "재야의 고수" 이고... 하다못해서 마을에서 훈장으로 있으면서 사람들을 키우기도 했던 겁니다.

훈구파의 후손이라고 하더라도 스승으로부터 배우는 것이 있는데.... 당연히 사림의 사상으로 길러지는 것이지요.


여튼 사림끼리 일단 다 중앙을 차지하였는데...  훈구파의 잔존들을 어떻게 처리를 하느냐? 훈구파를 쫓으면서 생긴 자리를 어떻게 자신들에게 분배하느냐? 등으로 대립을 하게 된 겁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면서 사림끼리의 분열이 시작된 것이 선조의 "이조전랑 직" 사건이 되지요. 사실 온몸에 기름이 부어졌는데... 어디에서 부싯돌이 튀겨지느냐? 이러한 것이 된 것이지요.


훈구파에 대한 강경파는 동인이 되었고, 훈구파에 대한 온건파는 서인이 되었습니다.


참고로 동인의 경우에는 국회의원으로 치면... 초선의원으로 생각히시면 될 겁니다. 서인의 경우에는 사화를 다 겪은 나름 베테랑으로 보면 될 것이고요.


아무리 티격태격이라고 하더라도 미운정도 정이라고 온건하게 대처하자는 것이 서인이었다면... 이제 갓 들어와서 자신들의 세력을 넓히기 위해서 투쟁이고 뭐고 감수하는 쪽이 동인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하지만 학풍상으로는 정 반대의 입장이 되는데....  정치권에 오랫동안 몸담아왔던 서인의 경우에는 학풍이 정갈하지가 못해서 이이를 끌어들이면서 "율곡 이이 오오오오 킹왕짱!" "오오 성혼 날 가져요~" 하는 형국인데 반해서....


동인의 경우에는 정치적으로는 신입이지만.... 학풍면으로는 재야에서 공부를 하던 이들이 되다보니... 학문면에서는 매우 탄탄했던 분들을 받드는 형식이 컸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퇴계 이황의 가르침".... :남명 조식의 가르침을 되뇌이며~~" 를 이야기하는 것이라 보면 되겠죠?


일단 초기에는 좀 여러가지 일이 있지만... 결론은 "동인의 득세" 로 보시면 됩니다.

동인의 득세 이유는 정여립(동인)의 모반사건으로 콧대가 무진장 높았던 정철(서인)이... 선조와 "독대" 를 한 자리에서... "세자를 책봉하라." 고 말한 것 때문이었습니다.


참고로 조선시대에서 "독대" 는 거의 반역과 비슷할 정도로 보는 경우도 있었고, 선조는 임진왜란 때 급하게 광해군에게 세자를 내려주고서는 왜란이 끝난 이후에 세자책봉을 되돌리려는 움직임도 있었을 정도로 "후계자인 세자 책봉을 싫어한 사람" 이었다고 보면 됩니다.


즉, 자신과 독대를 하였다! 라는 이유와 더불어서 "내가 싫다는데도 계속 밀어붙여?" 라는 죄목이 정철에게 씌워져서 동인이 득세를 하게 된 것이지요.


그러면 동인이 이것으로 멈췄으면 모르겠으나.... 이젠 정철을 위시로하는 서인의 처리를 두고 의견이 갈립니다.


서인에게 피가 맺히고 한이 맺힌(정여립의 모반으로 직접적으로 피해를 본 세력) 동인세력은 강경한 주장을 하게 되겠죠?

이들은 "북인" 으로 불리게 됩니다.


그러면 당연히 정철만 족치고 나머지는 그런대로 따지고 보자 하는 온건파도 있는데... 이러한 동인세력은 당연히 "남인" 으로 불리게 됩니다.


즉, 사림파는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고.... 동인이 남인과 북인으로 나뉘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결론으로 본다면... 북인의 득세가 됩니다. 물론 일방적인 득세는 아니고... 남인과 주로 공존을 하는데... 북인이 좀 더 주요직에 앉아서 정국을 좀 더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그러한 경우를 말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북인이 그러면 가만히 있으면 좋겠으나.... 선조가 "영창대군" 을 낳아버립니다. (참고로 영창대군의 어머니는 세자인 광해군보다도 더 어립니다. 그런데 광해군은 그러한 영창대군 어머니를 "어마마마" 라고 불러야 했습니다.)


여기에서 광해군 파와 영창대군 파가 나뉘는 겁니다.

아무래도 세력이 상대적으로 오래 누적이 된 광해군 파가 크다보니... 대북으로 불리고... 갓 나온 영창대군 파는 세력이 좀 약하다보니 소북으로 불리게 됩니다.


소북이야 광해군에 의해서 영창대군이 죽임을 당하면서 사실상 사라지게 됩니다. (목숨은 붙어는 있기는 한데... 완빤치 나오면 굴러떨어지는 매우 약한 세력이었죠.)


그리고 인조반정으로 인해서 광해군 파인 대북도 같이 쓸려나가게 되지요. 이것으로 "북인" 은 역사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면... 인조반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는데... 북인이건 남인이건 이들은 동인이 계파입니다. 이들의 반대세력이라면 당연히 어디일까요? 당연히 서인이 됩니다.


즉, 인조 시기에는 "서인의 집권기" 라고 보시면 됩니다.


허나 이들도 남인과의 공존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나름 평화적인 방법(?)으로 자신들끼리 주도권 싸움을 하였지요.


대표적인 예시가 현종시기의 예송논쟁이 되겠습니다.


첫번째 예송논쟁으로 서인이 집권을 하였고.... 두번째 예송논쟁으로 남인이 집권을 하게 됩니다.


이 경우에도 청남과 탁남으로 나뉘는데...

예송논쟁으로 서인과의 공존을 이야기 한 남인은 '탁남'이라 불리게 됩니다....

예송논쟁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왔던 남인들은 당연히 자신들이 더욱 차지해야 한다고 이야기 하면서(강경파) 남인들의 세력을 더 크게 해야 한다고 하면서 "청남" 으로 불리게 됩니다.

여기에서 "탁" 은 흐리다는 뜻이고.... "청" 은 맑다는 뜻이 있습니다.

다른세력의 공존여부를 생각해보면... 어디가 온건파이고 어디가 강경파인지 떠올릴 수 있을겁니다.

어찌되었거나 주도세력은 남인입니다. 그냥 남인으로 퉁쳐도 크게 상관은 없습니다. (물론 여기에서는 "탁남" 이 좀 더 주도적입니다.)


그리고 남인이 집권세력이 된 채로... "숙종" 이 집권하게 됩니다.

숙종때의 경우에는 "환국" 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대대적인 물갈이가 일어났다는 소리지요.


남인의 천지였던 숙종초기에 환국이 일어나면서 서인세력들이 독차지하게 됩니다.


참고로 '독차지' 라고 이야기를 한 것에서 느낌이 오실겁니다. 남인에서도 청남과 탁남이 있었다고 했는데...

서인에서도 마찬가지의 흐름이 있었겠죠?

예송논쟁 시절에 상대적으로 탁남과 친분이 깊었던 서인 계열(정확하게는 노론을 디스했던 부류)은 "소론"이라고 불리게 되고...

예송논쟁때 청남과 직접적으로 대립을 했고 서인정권을 더욱 공고히 하려고했던 서인계열은 "노론" 이라 불리게 됩니다.


그런데 '독차지' 라는 말이 붙은 것에서 아시다시피.... 서인쪽이 세력을 잡았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노론'이 득세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노론은 청남 탁남 할 거없이.... "남인들은 썩 나가버렷!!!" 을 시전해버린 것이지요.


그러다가... 우리들이 잘 아는 "희빈 장씨" 가 들어오는 것으로 대표되는... 다시금 환국이 일어납니다.

그리고는 다시금 남인의 세계가 펼쳐지지요. 희빈 장씨가 '남인 쪽' 사람이거든요.

(다만, 여기에서는 청남과 탁남의 구분은 어렵습니다. 다만.... 청남에 가깝다고 볼 수 있지요.)


하지만.... 결국 "희빈 장씨" 가 죽어나가는 것으로 대표되면서... 남인의 세력은 사실상 끝이나고.... 다시금 서인계열이 득세를 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여기에서 서인은? 당연히 "노론" 입니다.


그런데... 비록 서인계열이 득세를 했고 당연히 '노론' 이 우세이지만.... 이번의 경우에는 희빈 장씨의 소생인 "세자" 가 존재하기 때문에... 남인의 색채도 다소있는 "소론"이 남아있게 됩니다.


정확하게는 희빈 장씨까지는 지못미라고 치더라도... (청남에 가까웠다는 것에서 알다시피 서인과 대립각이 있었단 것이지요.)

서인쪽에서도 소론 쪽이 세자는 잘 방어해준 셈이 되지요. 공식적으로 세자를 폐하진 않았고 결국에는 "경종" 이라는 왕이 되니까요.


그런데... 이들에서도 세력이 나뉩니다. 완론파(속칭 완소)와 준론파(속칭 준소)로요. 왜 세력이 나뉘었느냐? "연잉군" 때문입니다.

연잉군을 축출하자는 쪽은 준론(준소)이 되고...

연잉군을 인정하자는 쪽은 완론(완소)이 됩니다. 그런데 사실상 뭐 이런 것 정도만 있다.... 이렇게 생각하시고... 그냥 "소론" 으로만 보셔도 됩니다. 결론은 연잉군이 축출되지 않았고... 경종 이후에 '영조' 가 되니까요.


어찌되었거나... 숙종 이후에 경종이 즉위를 하면서.... 당연히 "소론" 쪽이 득세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정도는 남인을 등용하기는 하지요. (사실 숙종의 희빈 장씨 이후로는 남인은 그냥 야당으로만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어찌되었거나 갈려나가면서 힘은 뚝뚝 떨어지는 상태로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면.... 경종이 죽어도 너~~무 일찍 죽은게 잘못이되겠지요.

영조의 경우에는 당연히 자신에게 손을 들어준 "노론" 을 중시하게 됩니다.


남인은 정작 자신의 정적이고... 이러한 정적을 주도적으로 쓸어내준 쪽이 '노론' 이면서...

소론의 경우에는 "자신을 제거하려고 했고(준소)" , "제거는 아니더라도 탐탁치 않은 부분이 있어했던(완소)" 경우가 있었으니....

소론과는 친해지기 어려운 것이지요.


당연히 영조 즉위 이후에 경종의 죽음을 둘러싸고 소론쪽에서 난리를 피우기도 했습니다.(이인좌의 난) 이것으로 사실상 소론들이 갈려나갔습니다.


하지만.... 영조는 여기에서 탕평책을 펼칩니다. 영조가 내세운 논리는 이렇게 요약가능합니다.

"솔직히 따져보자... 노론아 너도 잘못이 있고(왕비인 "희빈 장씨" 를 죽인 것)... 남인아 너도 잘못이 있고(인현왕후 폐출, 자신의 정적)... 소론아 넌 말안해도 알지?(특히 준론으로 대표되는... 이인좌의 난) 그러니까 다들 약점이 있는거 다 아니까.... 그냥 사이좋게 지내라 응?"


즉, 다들 약점이 잡혀있는 거 아니까.... 서로에 대한 음해성 공격을 하지 않고 화합하자는 완론탕평을 외치는 것이지요.

여기에서 재미있는 점은 소론이 나뉜 것이 준론(준소)과 완론(완소)으로 나뉘었는데.... 당연히 소론중에서도 "완소"를 키워준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물론 소론의 세력중에서 완론을 따온 것은 아니겠습니다만... 소론의 세력중에서 완론이 "영인군의 축출에는 찬성하지는 않은 소론" 이니까... 영조의 입장에서도 인정해 줄 수 있는 것이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아무리 탕평책을 펼쳤다고 하더라도.... 노론의 득세라고 보시는게 편합니다.



사도세자가 나오는데.... 사도세자의 속 마음을 알 수는 없지만.... 확실한 점은 "노론을 싫어했다." 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재미있는 점은 사도세자의 아내(혜경궁 홍씨) 쪽은 정작 "노론" 이었다는 겁니다.


여튼 자신들을 싫어하는 세자를 노론들이 그냥 볼 리는 없고... 당연히 영조를 통해서 사도세자를 죽이게 만듭니다.

(사도세자의 죽음은 당연히 아시는대로입니다. "뒤주" 에서 최후를 맞이하지요.)


사도세자의 죽음 이후에 영조는 또 다시 노론으로부터 부추김을 받게 됩니다. 당연합니다. "후에 정조가 되는 왕세손" 때문이지요.

즉, 노론은 왕세손도 없애라는 이야기를 한 겁니다.


그러나 영조는 왕세손을 지키려고 매우 애를 썼습니다. 다른 왕족의 아래에 입양을 보내면서까지요.


그리고 이제 정조가 왕에 올랐습니다. 이 때 정조가 했던 말이 매~우 의미가 깊었다고 하지요?

"아~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당연히 이것을 들은 노론은 자신들의 처지가 어찌될지 눈에 뻔히  느끼겠죠?


정조는 비록 족보상으로는 왕족의 다른 집으로 들어서기는 하였지만.... 자신의 뿌리를 절대 잊어버리지 않았다는 소리가 됩니다.


그리고.... 정조는 당연히.... "너도 죽창 나도 죽창" 이라고 할 수 있는 시시비비를 가려서 각 붕당에서 사람을 뽑아쓰지요.

이것이 준론탕평이라고 합니다. 당연히 노론의 세력들이 갈려나갑니다. (특히 "노론 벽파")

의도치않게.... 소론의 준론파와 이름이 겹치기도 합니다. 그리고.... 대세였던 노론을 배제시키지는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시시비비를 가렸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노론 중에서도 사람을 골라서 뽑았다는 것이 됩니다. (다시 말해서 '시파' 등용)


이야기를 깜빡하였는데....

노론중에서도 "사도세자를 죽이는 것까지는 좀 그렇지 않나?" 라고 했던 목소리가 있었고... 이들은 시파 라고 불립니다.

당연히 "사도세자는 죽어 마땅하다." 라고 본 노론은 벽파라고 불리고요.


즉, 노론에서 "시파" 라는 것과 "벽파"  라는 것이 나옵니다.


이러한 시파와 벽파는 정조에 대한 행동에서도 마찬가지로 대입해보면 됩니다.

사도세자에 대한 연좌로 왕세손도 폐해야 한다고 했던 쪽이 '벽파' 로 볼 수가 있고...

그래도 어린 왕세손에게까지 책임을 묻는건 너무했다. 고 했던 것이 "시파"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사도세자의 아내였던 혜경궁 홍씨의 입장은 어디쪽인지 아시겠죠? 비록 노론이기는 하였지만.... "시파" 쪽인 겁니다.

정치적인 견해가 다르다고 하더라도.... 배우자를 잃는 것과 자신이 중전마마가 될 자격을 일는 것까지는 볼 수가 없는 것이기도 하지요.

아니지 남편이 죽는 것 까지는 최대한 접어놓고 본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자신도 중전이 못되는 것까지는 인내하고 본다쳐도....

자기가 낳은 아들까지 제거하려고 하는 것에서는 '부모의 입장' 에서 좋게  볼 수 있을까요? 그래서 노론이지만 "시파" 에 속하게 되는 겁니다.



즉, 정조는 노론 중에서도 "시파" 쪽을.... 소론에서는 세력이 남아있는 쪽인 완론 쪽을 거의 그대로...(하지만 이미 세력은 미약합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남인을 골라서 뽑은 것이 되는 겁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시기의 남인의 대표인물은 '정약용' 이 있습니다.)


정조는 그냥 "노론 시파" 를 중심으로 세력을 구축했다. 이렇게 보는게 편하기도 합니다.



정조 사후에는.... 대비마마 "정순왕후 김씨"를 필두로하는 노론 벽파가 시파들을 마구 갈아내버립니다. 어찌보면 노론 시파에 대한 반동효과라고 볼 수가 있지요. 그리고... 이때 남인들도 갈려나갑니다.

남인들이 갈려나가는 주된 이유로는 "천주교"를 보면 됩니다.

물론 남인이라고 다 천주교는 아니지만 천주교에 남인이 많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천주교 인물에서 어느정도의 시파 계 인물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노론 벽파 인물이 벅벅 갈아대니까.... 정순왕후 김씨의 사후에 반동효과로 "안동 김씨 김조순" 을 필두로 하는 노론 시파들이 들고 나오게 된 겁니다.


물론? "안동 김씨" 를 중심으로요. 이것이 흥선대원군 시기까지 오신다고 보면 됩니다. 노론 시파 중에서도 "안동 김씨" 로 보시면 될 겁니다. 일단 노론 시파의 경우에는 "천주교에는 관대" 했던 편입니다. 흥선대원군이 대대적으로 갈아댔지만...


사실 정조 사후에 사실상 붕당정치 자체는 끝났다고 봐도 됩니다.